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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이방인들 201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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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이방인들 2010.04.15


이른 새벽의 여명을 뚫고 메트로에 오르면 많은 이방인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아직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반쯤 눈을 감고 비스듬히 몸을 누인 사람, 하루의 일과를 위해 작업 공구가 든 비닐 백을 끼고 조는 사람, 그들의 굵은 손마디에서 삶의 애환과 노동 후에 굳어진 거북 등 거죽 같은 손 등에서 녹록치 않은 삶의 모습을 읽어내게 됩니다. 이른 시간에 일터를 향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방인들이 많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일들이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게 합니다.  
체류증을 갱신하기 위해 관공서를 가보면 역시 이른 아침부터 예약된 이방인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놓치면 거의 하루를 그 일로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원과 이방인 사이는 얇은 유리창으로 공간을 가르고 있지만 유리 벽 안쪽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전화기를 붙들고 긴 통화를 하거나 안쪽으로 들어가 서류더미를 느릿느릿 헤집고 있는 모습은 밖에서 긴 줄을 선 이방인들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기만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불평하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을 본 일은 없습니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서두를 것이 없다는 듯 마냥 기다리는 모습을 봅니다.


이방인 L'étranger - 하면 우리는 알베르 카뮈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문학가로 소설 ‘이방인’속의 주인공 뫼르소Meursault 를 통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l'absurde 에 대해 저항하며 실존에 대한 의미를 던져줍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마치 제 3자인 것처럼 바라보는 주인공의 이름은 얼핏 우리말 ‘모르쇠’와 흡사하게 들립니다. “인간의 가슴 속에서 울려 퍼지는 미칠 듯한 명징에의 요구와 이 불합리한 세계의 충돌, 이것이 바로 부조리다.”라고 카뮈는 말합니다.
자신의 죄를 판결하는 재판장에 우두커니 앉아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재판을 지켜보는 뫼르소처럼 이젠 세상이 제시하는 방식에 무덤덤하게 판결을 받는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사실은 모두 이방인들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인을 썼던 카뮈 자신도 알제리 태생의 이방인이었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날린 프랑스인들 중에는 사실은 이방인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화가 마크 샤갈은 러시아 태생이었고, 피카소는 스페인 태생이며 라듐을 발견한 물리 화학자 마리 퀴리는 폴란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보고 이방인이라 부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부친은 헝가리 출신이었으며 중국과 외교마찰을 빚었을 때 중국에서는 사르코지의 족보를 파헤쳐 그의 조상들이 기원전 황하유역에 출현한 ‘사오하오족’인 여진족으로 중국 북방민족이었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들은 모든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됨을 발견하게 되며 동질성과 이질성을 알게 됩니다. 그 속에서 융화와 저항의 행동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방인을 미국에서는 The Stranger로 영국에서는 The Outsider로 번역했는데 전자는 외국인, 후자는 외부인, 혹은 제3자, 소외인, 타인, 낯선 사람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사회나 문화의 충돌은 있게 마련입니다. 이 충돌 사이에서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은 자신의 인격과 삶의 철학에 의해 선택될 뿐입니다. 이 사회가 주는 감사로, 또는 불이익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선택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어리석은 일은 남의 결점만 찾아내는 일이란 점입니다. 
내 삶에 이방인이 아니라 주인일 때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며 의미가 있어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글․그림: 정택영(화가) greata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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